흥선대원군 외교 정책 (통상수교 거부 정책)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


배경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조선은 서양 세력이 통상과 천주교 전파를 통해 침략한다는 위기 의식 속에 열강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는 정책을 취하고 국방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무기를 개량하고 강화도에 포대를 설치하여 해안 경비를 강화하였다.

서양 세력에 대한 경계심 고조

이양선의 출몰과 통상 요구, 천주교의 확산, 열강의 베이징 점령 소식,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과 접근 등이 위기 의식을 고조 시켰다.

서계 사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천황제를 복구하면서 주변국에 사신을 보냈는데, 조선은 일본의 국서가 함부로 관작을 고치고 천황 등의 용어를 사용한 점을 들 어 접수를 거부하였다(1868).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정한론(조선 침략 주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의의

 서양 제국주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시킨 반외세적 자주 운동이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한계

급변하는 19세기 후반의 세계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근대화를 지연 시키는 막대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참고 영상(흥선 대원군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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